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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심포지엄 「중세의 한일 관계와 쓰시마 해협 연안 사회」

2021-07-26

  본 심포지엄에서는 15・16세기(한국의 경우 조선왕조 전반기, 일본의 경우 무로마치・전국시대)의 양국 관계에 대해 일본사, 한국사 전문 연구자 4명의 연구 발표를 온라인 형식으로 실시했다. 국내외 전문 연구자를 비롯해 학부생・일반시민까지 약50명의 참가자가 참여했다.

  1392년에 탄생한 조선왕조는, 왜구 통제를 염두에 두고 연안 방비 체제를 강화하면서도, 일본측의 경제적 욕구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응할 수밖에 없는, 쓰시마 소우우지와의 관계를 기축으로 하는 대일 통상 관리 체제를 형성했다. 이에 창구항・통교자의 제한, 무역액의 상한 설정, 항만・연해에서의 활동 제한이 실시되었다. 이에 대해, 쓰시마를 중심으로 한 일본측 관계자는, 가짜 명의의 통교인 파견, 밀수 무역 등, 조선측의 규제를 뚫고 활동 범위를 넓혀, 한반도 남쪽 연안 지역에 중앙 권력이 상정, 환영하지 않는 형태의 교류 상황을 만들어 내면서, 지역의 논리와 국가의 논리 사이에 대립이 발생했다.

  제1부에서는 「현장의 논리」로서, 한반도 남부 연안의 현장의 상황을 일본측, 조선측 양쪽의 시점에서 다루었다. 세키 슈이치는 조선 연해에 대한 일본 어민의 진출 문제를 다루며, 쓰시마 본섬에서의 어업 방식의 차이에 기반해, 쓰시마섬 외부의 어민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이어서 이태훈은 조선 남부 연안의 왜인 거주지 형성과정 및 조선・쓰시마측의 권력에 의한 그 관리 체제와 이를 둘러싼 양측의 교섭에 대해 논했다.

  제2부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시선」으로서, 현장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었던 일본과 조선의 권력자들에서 있어서의 상황을 다루었다. 키무라 타쿠는 조선왕조가 대일관계의 창구・매개자로 삼는 쓰시마를 외부(일본)의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질서의 외연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위치시킨 논리의 구도를 논했다. 규슈대학의 이토 코우지는 미노의 영주 도키씨에 의해 이루어진 조선에 대한 대장경 청구를 들어, 조선과의 독자적 통교를 전개할 수 있었던 쓰시마 해협 근접 지역과는 달리, 원격지의 지역 권력에게 있어서 중앙 정부(무로마치 막부) 이외에는 조선 통교의 파이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논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아라키 카즈노리에 의해 각 보고의 상황 이해, 사용 개념 등에 관한 자세한 코멘트가 있었으며, 이어서 플로어 참가자와의 질의 응답이 이루어졌다. 매우 열띤 토론이 이루어져 예정 시간을 크게 넘겨 끝난 심포지엄이었다.